1000일 기도로 ‘불교 중흥’ 발원한 ‘관악산 연주암’ 0
 작성자: 최고관리자  2021-08-25 14:08
조회 : 2,027  

수도권 대표 기도도량 연주암
연주대와 함께 ‘관악산’ 명소

연간 수백만 찾는 관악산서
1%라도 불자 만들겠다 서원

3월13일 1000일 기도 입재
산문출입 금하고 매일 3차례
기도 생중계로 불자 동참 유도

휴식공간 마련 등 도량 정비
템플스테이 내실화 등도 추진

관악산 연주암은 해마다 수많은 참배객과 등산객이 찾는 기도처이자 휴식공간이다. 사진은 기암 절벽 정상에 위치한 연주암 연주대 모습.
연주암은 관악산 연주봉의 남녘에 위치한 천년고찰이자 수도권을 대표하는 기도도량이다. 관악산은 빼어난 기암절벽과 울창한 산림이 어우러진 바위산이다. 그 꼭대기가 마치 큰 바위기둥을 세워 놓은 모습으로 보여서 ‘갓 모습의 산’이란 뜻으로 ‘갓뫼’나 ‘관악(冠岳)’이라고 불렸다. 특히 서울 근교에 자리 잡고 있어 연일 수많은 등산객들로 붐비는 산이다.

연주암(戀主庵)은 해발 629m의 기암절벽 정상에 위치한 연주대(戀主臺)와 함께 관악산의 명소로 손꼽히는 곳이다. 연주암은 677년(신라 문무왕 17) 의상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연주암중건기> 등 자료에 따르면, 의상대사가 관악산에 의상대를 세우고 수행했으며 그 아래에 관악사를 창건했다는 내용이 전해지고 있다.

연주암은 ‘주인을 그리워하는 암자’라는 뜻을 담고 있으며, 그 유래에 대해서는 2가지 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첫째는 고려 말 충신 강득룡과 서견, 남을진 등이 고려 왕조가 멸망하자 관악산 의상대로 은신한 뒤 멀리 송도를 바라보면서 통곡해 이름을 붙였다는 이야기다.

두 번째 설은 조선 태종이 셋째 아들 충녕대군(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주려고 하자 첫째 아들 양녕대군과 둘째인 효령대군이 왕위에 대한 미련을 떨쳐버리고 이곳에서 수행했던 일에서 기원을 두고 있다. 두 대군이 왕궁이 바로 내려다보이는 현 위치로 관악사를 옮기자, 이후 사람들이 두 대군의 심정을 기리는 뜻에서 ‘의상대’를 ‘연주대’로, ‘관악사’를 ‘연주암’으로 각각 부르게 됐다는 설이다.

연주암은 ‘나한기도도량’으로 널리 이름나 있으며, 2600만 수도권 주민의 지친 삶을 치유하고 어루만져 주고 있다. 깎아지는 듯한 바위 절벽인 연주대 위에 들어선 연주암 응진전에는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미륵보살과 제화갈라보살이 좌우협시불로 자리잡고 있으며, 그 뒤편에는 16나한이 모셔져 있다. 또한 응진전 옆 암벽에 마련된 감실에는 약사여래불이 봉안돼 있다.

연주암에서 간절하게 기도한 뒤 가피를 입었다는 영험담이 넘쳐나면서 2시간 남짓 걸리는 험한 산행길에도 불구하고 서울은 물론 전국에서 찾아온 불자들의 기도소리가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연주암 주지 탄문스님은 은사인 연주암 회주 자승스님(전 조계종 총무원장)의 원력으로 첫 발을 내디딘 상월선원 결사정신으로 불교 중흥과 국난 극복을 이루겠다고 발원하며 지난 3월13일 1000일 기도에 들어갔다. 스님은 1000일 동안 산문 출입을 금한 채 매일 새벽기도와 사시기도, 저녁기도를 올리고 있다. 1000일 기도 입재식에는 자승스님이 참석해 한국불교 중흥과 국난극복을 발원하며 1000일기도에 들어가는 연주암 스님과 신도들의 정진을 독려했다.

자승스님은 “모든 것을 걸지 않는다면 과정 속에서 여러 장애가 생겨서 1000일 기도를 원만하게 회향하는 게 쉽지 않다”면서 “모든 장애를 극복해 내 1000일 뒤에는 온 도량이 신도들로 가득 참으로써 연주암 스님과 신도들이 한국불교 중흥 불사에 큰 힘을 보탤 수 있길 발원한다”며 격려했다.

연주암 주지 탄문스님은 연주암 부주지 소임을 맡았던 20여 년 전과 현재는 극명한 대비를 보인다고 연주암의 현실을 털어놨다. IMF 외환위기 시절인 1990년대 후반에는 등산객은 물론 참배객들로 넘쳐났지만 20여 년이 지난 지금은 코로나 정국과 신도 고령화가 맞물리면서 참배객 수가 확연하게 줄어들었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이같은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탄문스님은 1000일 기도를 통해 연주암을 수도권 대표 도량으로 사격을 일신시키고 더 나아가 한국불교 중흥과 국난극복을 위한 중심도량이 되겠다는 원력을 세웠다. 특히 스님은 한해 수백만명에 이르는 관악산 등산객 가운데 단 1%라도 불교와 인연을 맺게 해주겠다는 서원했다.
 


연주암은 템플스테이를 통해 적지 않은 젊은이들이 찾고 있다. 사진은 촛불명상 모습.
스님은 템플스테이를 통해 새로운 포교 희망을 엿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산문 출입을 금한 채 기도하다보니 템플스테이 참가자들과 차담 등을 통해 자연스레 소통할 기회가 많아졌는데 이를 통해 젊은이들이 불교에 대한 호감이 크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게 됐다고 털어놨다. 젊은이들이 불교에 대해 관심이 없는 게 아니라 그들이 불교와 접할 수 있는 기회와 환경조차 제대로 마련하지 못한 채 막연한 선입견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템플스테이에 참가한 이들과 함께 기도하고 차담을 나누다보니 20, 30% 정도는 다시 연주암을 찾아오더군요. 그때는 혼자가 아닌 친구나 지인들과 함께 와요. 대부분 사찰이 그렇듯이 당장 사찰 재정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귀찮다, 시간만 뺏긴다, 다시는 안 올거다 등 이런저런 핑계로 그들을 품지 못한 채, 젊은이들이 불교를 꺼린다거나 싫어한다고 오판했던 겁니다. 그들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듣고, 그들이 더 자주 찾을 수 있는 인적 물적 토대를 구축해 나갈 것입니다.”

연주암은 참배객과 등산객이 경내에서 편하게 쉬었다 갈 수 있게끔 도량정비부터 나선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먼저 관공서와 종단 등과 긴밀하게 협의해 수십년간 이어져온 경내 불법시설물 문제를 해결해 양성화한다는 방침이다.

특히 템플스테이를 통해 젊은이들에게 더 다가가고, 스님과의 차담과 휴식공간 마련 등을 통해 지친 몸과 마음을 재충전하고 새로운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힐링도량을 만들어 간다는 계획이다. 참배객과 등산객들을 위한 문화공연과 관악산 생태계 살리기, 새해 해맞이 행사 등 다채로운 사업을 통해 한번 다녀간 이라면 누구나 가족이나 지인 손을 잡고 다시 찾아 올 수 있는 불교와의 새 인연을 만들어 주겠다는 생각이다. 아울러 중장기적으로는 평생동안 연주암을 열심히 다니다가 나이가 듦으로써 사찰까지 올라오기 힘든 고령의 불자들을 위한 센터를 시내에 짓겠다는 중장기 프로젝트도 구상중이다.

탄문스님은 “연주암은 기도만 하는 도량이 아니라 지역을 대표하는 열려 있는 힐링도량, 문화도량, 포교도량이 될 수 있도록 신도님들과 지극정성으로 부처님 전에 기도 올리면서 하나 둘 실천해 나간다면 분명히 원력을 성취할 수 있을 것이라 굳게 믿는다”고 환한 미소를 지었다.

 


연주대 산행에 나선 템플스테이 참가자들. 
과천=박인탁 기자 parkintak@ibulgyo.com

 

■ “열린 마음으로 먼저 다가가겠습니다”

불교 중흥과 국란 극복 발원
1000일기도 입재한 탄문스님


탄문스님은 3월13일부터 불교 중흥과 국난 극복을 발원하며 산문 출입을 금한 채 1000일 기도를 올리고 있다. 사진은 7월7일 신도들과 함께 기도를 올리는 탄문스님.
“먼 곳을 마다하지 않고 기도영험도량 연주암에 오셔서 남편의 승진과 자식의 학업 성취, 취업 등 원(願)을 이루고자 기도드리는 뒷모습만 보아도 참으로 눈물겹도록 지극정성이 느껴집니다. 이런 불자님들의 원력을 확대해 이 땅에 불교가 중흥할 수 있도록 1000일기도를 올리고 있습니다.” 3월13일 상월선원 결사정신으로 불교중흥과 국난극복을 발원하며 1000일 기도에 입재한 연주암 주지 탄문스님은 1000일 기도를 올리는 의미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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